소농 6기를 마치고
곽종성
서울생태귀농학교 61기를 마치고 소농교육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지원서를 넣고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있는 봉소골 교육장에서 면접을 보았다. 지금까지 가 본 학교 중에서 시설 면에서는 가장 친환경(?)적인 학교인 것 같다.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행히 합격하여 3월14일 소농 6기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식에서 처음으로 같이 일 년 동안 몸으로 한철을 나야 하는 동기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총 14명. 30대부터 50대까지, 여성 8명, 남성 6명. 그리고 전 기수 선배님들의 열렬한 환영사와 뒤풀이로 드디어 “자립하는 소농학교 6기” 교육의 막이 올랐다.
소농교육은 크게 이론교육, 농사실습(논과 밭), 토론, 농가방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생님은 교장선생님, 담임, 논ㆍ밭 담당선생님 네 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기간은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진행되고, 매주 토요일 정규수업, 일요일 보충수업, 비상소집 그리고 당번들은 주 중에 나와야 된다. 학생들의 식사는 오전 참, 점심, 오후 참, 때에 따라 저녁도 식사 당번을 정하여 운영한다. 농사 실습할 땅은 밭이 약 320평, 논이 무논 500평, 밭벼 150평 정도이다.
작물은 벼, 밀, 보리, 각종채소류, 콩 등 잡곡류, 양념 채소류 등이 있으며 계절에 따라 그 종류를 달리한다. 그리고 일부 밭은 개인 밭으로 분양하여 개인이 하고 싶은 작물을 재배한다. 이상이 개괄적인 소농학교의 교육운영에 관한 내용이다.
입학식이 끝나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릴 즈음 본격적으로 올해 농사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밭부터 거름을 내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 때 교장선생님 말씀, “밭을 만들 땐 사람 길, 물길, 바람길을 고려하여 만들어라.” 라고 하신다. 그땐 무슨 말씀이신지 몰랐습니다. 졸업한 지금은 조금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종을 내면서 산의 흙도 파보고, 남의 오줌도 만져보고, 포트에 씨앗도 심어보고, 싹을 틔우면서 생명의 신비도 같이 느꼈다. 당번들은 사진을 찍어 공유하면서 시나브로 자라나는 싹들을 마냥 신기해하였다. 그중에 새싹인 줄 알고 물주고 잘 키웠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잡초도 많았다.
벼농사 준비도 시작하였다. 강의부터 시작하여 볍씨소독, 모판흙 만들기, 볍씨 뿌리기, 못자리 만들기, 논둑 정비, 개울정비 등등 주말만 되면 온몸의 흥건히 젖을 정도로 고되었다. 이번 기수에서는 토종벼인 돼지찰벼, 대관도, 자광도의 모를 내어 손으로 모를 심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를 내는 거라서 어설프기만 하였다. 그래도 모두 올가을에 풍년을 기대하며 열심히 모를 심었다.
올해는 많이 가물어서 논에 물이 많이 부족하여 우리 논 밑에 갈치 저수지의 물을 약 100여 미터 이상 끌어다 써야 했다. 저수지의 물은 날이 갈수록 논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우리는 그 물을 잡으러 저수지 안으로, 안으로 펌프를 들고 들어가야만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 논과 저수지를 오가며 농사에 있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한여름에 따가운 햇볕 아래 밭과 논의 김을 매면서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손으로 농사를 지어 자손들을 먹여 살리셨고 우리 농부님들도 이렇게 하여 도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올 가을의 벼 수확은 기계를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하였다. 낫으로 벼를 베고, 말리고, 발 탈곡기로 탈곡하였다. 탈곡하는 날, 사진작가 한 분이 요즘에는 이렇게 탈곡하는 것을 보기 어려운데 이런 장면을 찍게 되어 기쁘다면서 점심을 사기도 하셨다.
농가 방문으로 두 군데를 다녀왔다. 부안의 전세철 님 댁과 괴산의 박명의 님 댁이다. 앞으로 소농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형(典型)으로 삼을만한 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다. 방문하게 되면 궁금한 게 많아 묻고 답한다고 새벽이슬이 내릴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가을에는 다음 기수를 위한 준비를 해주고 떠나야 한다, 우리가 선배 기수에게 받았듯이. 먼저 벼는 잘 말려서 나락 상태로 보관하고 김장 채소를 다듬어 모두 모여 김장을 하였다. 그리고 밭을 만들어 월동채소를 심고 각종 씨들을 채종하여 종류별로 분류하고 갈무리하였다.
9개월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동기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왔다. 어설프기만 했던 낫질, 괭이질은 어느덧 수준급에 올라와 있고, 하나하나 지시해야 했던 일은 이제 목표만 주어지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일머리도 생기고, 서로의 장단점도 잘 알아서 서로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훈훈한 정도 생겼다. 그리고 자립하는 소농에 대해서도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앞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바탕도 마련되었다고 본다.
11월 21일 졸업식 날에는 입학식 때와 마찬가지로 선배 기수들이 과일, 떡, 술 등을 장만해 6기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소농 6기를 마치면서 농사를 통하여 남녀노소 관계없이 서로를 위하고 배려한다면 다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삶의 뿌리가 소농에서 시작됨도 알았다. 무사히 이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素農, 나의 본바탕으로 돌아가는 소농
蘇農, 흙을 살리고 나와 가족을 다시 살리는 소농
巢農, 예전의 공동체에 회귀하여 둥지를 트는 소농
疏農, 땅과 자연과 내가 서로 통하는 소농
逍農, 가슴 뛰는 사람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소농
笑農, 온갖 만물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소농
小農, 그런 작은 꿈을 가지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소농
“농민은 노동으로 토지를 관리하고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농지와 작물이 원하는 것을 잘 알게 된다. 농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력의 영속이다. … 이렇게 토지를 알고 작물을 아는 것 자체가 농부로 하여금 자아형성으로 행하게 한 것이다. 노동을 통한 자아형성,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개개의 인간존재는 대자연의 시간으로 측정하면 찰나이다. 이 순간의 존재로 허용된 인간이 자기자손의 영속을 기원하고, 대우주의 의지를 짧은 기간에 걸쳐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농경활동의 본질이다. 그리고 노동 속에서 대자연의 의지를 감지할 때, 스스로도 자연의 일부임을 느낀다. 이때 벌레도 짐승도 모두 나란히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小農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녹색평론사 펴냄) 중에서
곽종성
텃밭을 5년 정도 집 앞에서 짓다 생태순환 농업과 자급에 대하여 관심을 갖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짓고 싶다는 욕심으로 소농학교에 입학, 내년에는 봉소골에서 1년 정도 심화학습을 거친 후 귀농 예정이다. |
